“혹시 맥 Pro에 일반 PC용 그래픽 카드를 달 수 있지 않을까?”

궁금증은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i맥 같은 올인원 데스크탑 기종과 달리 여러 부품들을 입맛에 맞게 고를 수 있다는 점에서 맥 Pro가 더 매력적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하지만, 그래픽 카드 같은 경우 Boot Camp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윈도우즈를 깔아서 쓰지 않는 이상,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플이 지난 8월에 맥 Pro를 발표하면서 선택사양으로 내놓은 그래픽 카드는 엔비디아 지포스 7300 GT, ATI 레이디언 1900 XT, 엔비디아 Quadro FX 4500 이렇게 세 가지. 애플 온라인 스토어에서 구입하는 경우 BTO(Build To Order) 주문 서비스를 통해 이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 있다.

다만, 기본 사양인 지포스 7300 GT는 바로 위에 있는 제품인 레이디언 X1900 XT와 비교해 성능이 너무 뒤쳐진다. 차라리 요즘 들어서 일반 PC 사용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20~30만원대 제품을 기본으로 넣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간절하게 든다. 사실 일반 PC라면 이 가격대에서 아주 멋진 성능을 발휘하는 그래픽 카드를 얼마든지 고를 수 있기에 아쉬움은 더욱 크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마침 해외 웹사이트에서 일반 PC용으로 쓰던 엔비디아 지포스 7800 GT 그래픽 카드를 맥 Pro에 장착한 후 맥 OS X을 이상 없이 쓰고 있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이것이 동기가 돼 지금 현재 국내에 판매 중인 PC용 그래픽 카드를 과연 맥 Pro에서 쓸 수 있는지 테스트를 통해 알아보기로 했다.

테스트에 사용한 PC용 그래픽 카드의 종류는 총 다섯 가지. 엔비디아 제품으로는 지포스 7950 GX2(엔비디아 레퍼런스 보드)와 지포스 7900 GS(MSI), 지포스 7600 GT(체인텍)를, ATI 제품으로는 레이디언 X1900 GT(가온 디앤아이)와 레이디언 X1300(ATI 레퍼런스 보드)을 각각 준비하고 본격적인 테스트에 들어갔다.

우선 첫 번째 실험으로 각각의 그래픽 카드를 맥 Pro에 차례대로 꽂은 후 맥 OS X으로 시동할 수 있는지 그 여부부터 확인해 봤다.

맥 Pro의 확장 슬롯을 고정시키는 가이드를 제거한 후 맨 먼저 지포스 7950 GX2를 1번 16레인 더블 와이드 그래픽 슬롯에 꽂았다. 하나의 그래픽 카드로 SLI를 구축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까닭에 최고의 성능을 가진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지포스 7950 GX2는, 애플이 현재 판매하고 있는 맥 Pro용 레이디언 X1900 XT처럼 전력 소비량이 커, 12V 전원 커넥터를 이용해 그래픽 카드에 있는 6핀 전원 소켓과 로직보드에 있는 6핀 전원 소켓을 연결하는 절차가 추가로 필요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맥 Pro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과연 맥 OS X으로 시동이 되는지 지켜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컴퓨터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검정 화면만 계속해서 나타날 뿐이었다. 혹시나 싶어 10분을 넘게 기다려보기도 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다른 제품들은 어떠했을까? 지포스 7600 GT 같은 경우 맥 Pro에 기본으로 장착된 지포스 7300 GT와 동일한 계열의 GPU를 탑재하고 있어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기도 했으나 이 역시도 지포스 7950 GX2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뒤이어 나머지 그래픽 카드들도 차례대로 꽂고 테스트해봤지만 맥 OS X이 시동될 때 나타나는 애플 로고는 결코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앞서 준비한 PC용 그래픽 카드와 맥 Pro에 기본으로 들어있는 지포스 7300 GT를 확장 슬롯에 모두 꽂은 다음, 모니터 케이블을 지포스 7300 GT에 연결한 상태에서 맥 OS X으로 시동한 후 다른 PC용 그래픽 카드에 연결했을 때는 어떠한 결과가 나왔을까?

우선 이 실험에 들어가기 전에 PCI Express 확장 슬롯의 레인 구성을 확인해 보았다. 맥 Pro는 더블 와이드 그래픽 카드 슬롯을 포함해 총 4개의 PCI Express 확장 슬롯을 갖추고 있는데, 레인 구성은 맥 OS X 볼륨의 시스템 > 라이브러리 > CoreServices 폴더 내에 있는 ‘Expansion Slot Utility’를 사용하면 변경할 수 있다. 이번 테스트에 사용한 맥 Pro는 1번 슬롯에 16레인, 2번 슬롯에 1레인, 3번 슬롯에 1레인, 4번 슬롯에 8레인을 할당해 놓고 있었는데, 지금 하려는 실험은 두 개의 그래픽 카드를 꽂는 테스트이니만큼 따로 레인 수를 조정할 필요가 없어 기본 설정을 그대로 유지시켰다.

지포스 7950 GX2는 덩치가 크기 때문에 반드시 더블 와이드 그래픽 슬롯에 꽂아야 하는 관계로 편의상 4번 슬롯에 지포스 7300 GT를 꽂은 다음 5개의 PC용 그래픽 카드들을 1번 슬롯에 차례대로 꽂고 테스트에 임했다.

그 결과, 커널 패닉이 발생하는 지포스 7950 GX2만 빼놓고는 모두 다 정상적으로 시동이 되었다. 하지만 지포스 7300 GT의 DVI 포트에 연결된 모니터 케이블을 뽑아서 다른 그래픽 카드에 꽂으면 첫 번째 실험을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화면은 계속해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세 번째 실험으로, 이들 PC용 그래픽 카드를 맥 Pro에 장착했을 때 윈도우즈 XP로 시동하는 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기본 지포스 7300 GT 그래픽 카드를 꽂은 상태에서 맥 OS X으로 시동한 후 맥 Pro에 대한 지원이 추가된 Boot Camp 1.1.1 베타를 이용해 윈도우즈 XP SP2를 설치했다. 모든 드라이버 설치를 끝내고 그래픽 카드들을 차례대로 꽂아서 윈도우즈 XP로 시동이 되는지 확인했다.

테스트 결과는 대성공. 어떤 카드를 꽂더라도 윈도우즈 XP로 시동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드라이버를 설치하고 나면 일반 PC처럼 똑같이 쓸 수 있었다. 일반 PC와 다르게 맥 Pro는 EFI를 탑재하고 있어 처음 시동할 때 검정 화면이 계속되다가 조금 지나서 윈도우즈 XP 로고가 나타나는 것만 차이날 뿐이었다.

기왕 많은 수의 그래픽 카드를 맥 Pro에 꽂아본 만큼 윈도우즈용 하드웨어 벤치마크 툴로 유명한 3DMark '06을 사용해 32비트, 1280×1024 해상도에서 각각의 그래픽 카드가 얼마나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맥 Pro에 2GB의 메인 메모리를 탑재하고 테스트한 결과 지포스 7950 GX2는 8978점, 레이디언 X1900 GT는 5006점, 지포스 7900 GS는 4562점, 지포스 7600 GT는 3823점, 지포스 7300 GT는 1646점, 레이디언 X1300은 1445점을 기록했다.

함께 테스트를 진행한 테크노아의 곽문영 기자는 “맥 Pro에 지포스 7950 GX2를 장착했을 때의 결과는 아주 놀라울 정도로 높은 수치다. 얼마 전 Intel Core 2 Duo 2.4GHz(E6600) 프로세서를 탑재한 PC에 지포스 7950 GX2를 꽂아서 3DMark '06으로 벤치마크를 했을 때 7323점이 나왔던 것과 비교하면 1655점이나 높다. 3DMark '06 테스트 결과는 그래픽 카드의 성능도 중요하지만, CPU의 성능도 많은 영향을 미치므로 이것은 곧 Xeon 프로세서의 파워가 그만큼 대단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앞서 테스트한 결과는 솔직히 기자가 예상했던 것과도 거의 일치했다. 지포스 7300 GT가 아닌 다른 PC용 그래픽 카드들을 맥 Pro에 꽂았을 때 윈도우즈 XP로 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그래픽 카드가 일반 PC에서 사용하는 BIOS 뿐만 아니라 인텔 맥이 탑재한 EFI도 지원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아주 생생한 증거였다.

다만, 맥 OS X으로 시동이 안된 것은 ROM 크기가 맥용과 PC용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일반 PC용 제품이 64K인데 반해 맥용 그래픽 카드의 ROM 크기는 128K로 두 배나 더 크다. 우리가 맥 OS X으로 시동했을 때 처음 나타나는 화면을 고해상도로 볼 수 있는 것도 바로 ROM 크기가 더 크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에 테스트한 그래픽 카드에 맞는 맥 OS X 드라이버는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다. 당연히 맥 OS X으로 시동될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해외 웹사이트에 올라온 일반 PC용 지포스 7800 GT 그래픽 카드를 꽂아 성공했다는 보고는 아무래도 해당 그래픽 카드의 ROM 크기가 운이 좋게도 128K였고, 지포스 7800 GT와 Quadro FX 4500가 G70이라는 똑같은 GPU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까닭에 맥 OS X이 지포스 7800 GT를 Quadro FX 4500으로 착각하고 드라이버를 로딩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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