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는 독자중에서는 플로터(Plotter)라는 명칭이 낯선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플로터는 프린터와 달리 일상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기기가 아니기 때문인데, 생각보다 플로터는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고, 또 그 역사도 프린터에 뒤지지 않는다.

이러한 플로터라는 제품군이 필요한 이유는 도면이나 지도 등 대형 용지에 정밀한 그래픽 데이터를 출력하는 것이 필요해서인데, 컴퓨터가 개발되며 이를 활용해 정밀한 지도나 도면 데이터를 생성할 수는 있었지만 정작 이를 출력하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일반적인 프린터의 경우 정해진 활자를 사용하거나 대형의 핀을 조합하는 방식이었기에 이런 식의 정밀한 그래픽 작업에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따라서 그 당시 플로터의 구조는 지금 본다면 다소 독특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는데, 기계나 건축쪽에 몸담은 적 있는 사람이라면 낯설지 않을 이 플로터의 구조는 X-Y방식, 또는 플랫베드 방식 이라 불리던 것으로 용지가 플로터 위에 고정된 후 이 위에서 X-Y축 방향으로 각각 제어 가능한 구동암(장난감 뽑기 기계의 집게손을 움직이는 것과 같은 방식)을 사용해 펜으로 직접 그래픽 데이터를 종이 위에 그려나가는 방식으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프린터의 라인프린팅과는 완전히 다른 인쇄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인쇄 방식은 선이나 단순한 면으로 이루어진 벡터 데이터 표시에 적합했기에 지도나 도면 등의 인쇄를 위해서는 유용했지만 사진과 같은 비트맵 이미지 데이터 인쇄엔 그리 적합한 방식이 아니었고, 단색 펜을 사용하는 특성 역시 다양한 컬러를 인쇄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이 당시의 플로터는 앞서 말한 용도 이외의 사용으로는 크게 벗어나지 못했었는데, 이러한 플로터의 한계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 바로 잉크젯 기술이다.

예전 테크노아의 프린터 관련 기사에서도 몇 번 언급한 바 있지만 잉크젯 프린터의 역사는 다른 인쇄 방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지 않은 편인데, 그도 그럴것이 잉크젯 프린터는 미세한 잉크 방울을 노즐을 통해 분사하기에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미세 구조를 제작하는 기술이 확립되기 이전에는 충분한 품질과 정밀도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며 이러한 부분들이 개선되자 잉크젯 프린터가 가지는 고유의 강점을 이용해 플로터와 접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는데, 잉크젯 프린터의 강점이란 바로 간단한 구조를 뜻한다.

잉크젯 프린터는 라인단위의 인쇄 방식을 가지며, 인쇄를 위한 헤드와 노즐 부위는 정밀도는 높지만 작동 방식 자체는 비교적 단순하고 작다는 것이 특징인데, 이러한 특징은 근대 프린터 기술의 양대산맥을 이루던 레이저 인쇄 방식에 비해 인쇄 속도를 높이기 힘들다는 점에서는 단점으로 작용했다.

반면 레이저 프린터의 경우 토너 입자를 OPC(Organic PhotoConductor) 드럼에 옮긴 후 이를 종이에 전사함으로서 빠른 인쇄속도를 얻는 방식이기에 인쇄를 위해서는 OPC 드럼이 필요하며, 또 이 드럼은 용지의 한 축 길이보다 최소한 같거나 길어야 한다는 제약이 존재하는데, 이 때문에 대형의 용지를 사용하는 플로터에 레이저 인쇄방식을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최대 용지 사이의 짧은 축 길이보다 긴 크기의 드럼을 사용해야 하며 이는 자연히 가격 상승과 기기의 대형화로 이어지는 동시에 용지 크기의 제약을 초래되기에 A3 사이즈 이상의 대형 인쇄기에서는 레이저 방식을 찾아보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반면 잉크젯 방식은 헤드가 직접 좌우로 움직여 인쇄할 수 있기에 용지 크기를 비교적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구조 또한 간단히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살려 플로터에 응용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사실상 일반적인 가정용 프린터를 그 크기만 키운 것과 마찬가지이기에 기술적인 어려움 면에서도 유리함을 가지는 방법이다.

때문에 이러한 잉크젯 기술을 채용한 플로터가 주류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그 결과 플로터는 과거처럼 단순히 도면, 지도 작성 기기에서 벗어나 대형의 그래픽 이미지를 출력할 수 있는 인쇄 기기로서 그 활용폭을 넓히게 되었다.

특히 요즈음의 경우 개인 포트폴리오라던지 컬러 현수막 제작 등, 수장~수십장 수준의 컬러 인쇄물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제판 인쇄를 하기에는 비용상 문제가 있어 이러한 플로터 제품군을 사용한 인쇄소가 더 각광을 받고 있기도 하다.

현재 시장에서는 HP의 DesignJet 제품이 우세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뒤를 역시 프린터 명가 중 하나인 Canon이 ImagePROGRAF 시리즈 제품군을 내놓으며 바짝 추격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전 세대 캐논의 주력 플로터 제품이었던 iPF710이 경쟁 모델에 비해 뒤지지 않는 성능으로 플로터 시장에서 Canon의 위치를 보다 확고하게 인식시킨 바 있는데, 이번에 새로이 출시된 iPF810이 iPF710은 물론 경쟁사의 제품에 비해 어느 정도 뛰어난 성능을 보여줄 지가 관건이 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