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처럼 손에 만져지는 유형의 형체가 없기 때문에 쉽게 옮길 수 있다. 세상이 디지털화되면서 비디오 테이프나 카세트 테이프에만 저장되어 있던 영화나 음악이 디지털화 되었다. 디지털화 되었다는 것은 이전보다 훨씬 쉽게, 보다 광범위하게 영화와 음악을 퍼트리고, 다운로드 받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영화사들이나 음반사들은 자사 컨텐츠의 보호와 수익의 보전을 위해 이 시간에도 복제 방지 시스템의 구축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HDCP(High-bandwidth Digital Content Protection)는 앞으로 일반화될 1920x1080의 HD 해상도의 영상 컨텐츠에 탑재될 복제 방지 시스템으로, DVD에 이어 다가오는 블루레이 디스크나 HD-DVD에도 필수적으로 탑재될 예정이다.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에 의해 주창되고, 각종 디지털 규격 및 관련 칩셋을 제조하는 실리콘 이미지(Silicon Image)사에 의해 개발된 HDCP는 적용되는 HD 컨텐츠 및 재생 기기에 암호화 기술을 탑재해 서로간의 코드를 확인함으로서 컨텐츠의 불법 생산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기술이다. HDCP가 앞으로 다가올 HD(High Definition) 영상 시대에 컨텐츠를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할 것으로 많은 컨텐츠 업체들, 특히 헐리우드의 많은 영화사들은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현재 디지털 영상 미디어 규격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DVD 시대는 곧 가고, 앞으로 블루레이 디스크나 HD-DVD가 DVD를 대체할 것이다. 블루레이 디스크나 HD-DVD는 현재 DVD가 가진 4~9GB의 용량을 훨씬 뛰어 넘은 15GB~50GB의 고용량을 담을 수 있다. 이 고용량의 디스크에는 1920x1080 해상도의 고화질 HD 영상이 담기게 된다. 이전에는 필요한 기기와 영화 컨텐츠가 있으면 쉽게 영상을 감상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 출시될 HD 영상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HDCP 규격을 갖춘 기기가 필요하다.

따라서 HDCP를 지원하지 않거나 규격을 만족하지 못하는 플레이어나 PC에서는 블루레이 디스크나 HD-DVD에 담긴 1920x1080 해상도의 영화를 단지 1/4 정도의 해상도로만 감상할 수 있게 된다. HDCP는 앞으로 출시될 모든 블루레이 디스크 및 HD-DVD 규격의 영화 타이틀이나 관련 컨텐츠에 암호화 형식으로 탑재되며, 플레이어나 PC에서 이 암호를 풀어야만 HD 해상도의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 출시될 마이크로소프트의 새로운 운영 체제인 윈도우즈 비스타에서도 HDCP에 대한 규격이 명시되어 있으며, 새롭게 출시되고 있는 24인치나 30인치 PC 모니터들도 HDCP에 대한 지원을 명시하고 있는 추세이다.

앞서 HDCP가 단어뜻 그대로 고해상도의 HD 영상의 불법 콘텐츠 생산의 방지를 위해 탄생된 것이라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해당 컨텐츠에는 물론이고, 운영체제, 플레이어, 관련 PC 소프트웨어, 그래픽 칩셋, 모니터 등 관련 영상을 재생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곳에는 HDCP 규격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중 PC와 관련된 부분의 일례를 들어 살펴보자.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가까운 미래가 되면 현재 동네 DVD 대여점이나 DVD방에서 쉽게 볼 수 있는 DVD 타이틀이 사라지고 블루레이 디스크나 HD-DVD가 DVD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가정이나 업소에는 1920 이상의 해상도가 지원되는 텔레비젼이나 모니터가 서서히 보급되고 있을 것이다.

만약 동네 대여점에서 블루레이 디스크 규격의 '다빈치 코드 3'를 빌려서 내 방에 있는 PC를 통해 디지털로 감상하려 한다면? 이 '다빈치 코드 3' 타이틀에는 HDCP 암호가 걸려있다. 이를 재생하기 위해서는 HDCP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그래픽 카드가 설치된 PC가 필요하다. 또, HDCP 인증을 받은, HD 영상 재생용 소프트웨어도 필요하다. 이뿐만이 아니라 PC와 DVI나 HDMI로 연결되는 1920x1080 이상의 해상도를 가진 모니터도 필요하다(물론 이런 모니터 뒷면에는 HDCP 인증이라는 항목이 자랑스럽게 달려 있을 것이다). 즉, PC에서 HDCP 암호가 걸린 타이틀을 재생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해당 타이틀의 HDCP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그래픽 카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PC가 인터넷 뱅킹을 하기 위한 충분한 사양이 되고 은행 홈페이지로 접속도 되며 보호 유틸리티가 설치되어도, 은행 인증서 암호가 없으면 인터넷 뱅킹이 안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 시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단품 그래픽 카드 중 위의 예에서 살펴본 그런 환경을 구축할 수 있는 그래픽 카드는 단 한개도 없다. 현재 발표되고 있는 모든 소매용 그래픽 카드에는 HDCP의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디코딩 키를 탑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누군가는 "그깟 인증서 개념의 디코딩 키라면 그냥 그래픽 카드의 바이오스 업데이트나 소프트웨어 패치로 가능하게 하면 될 것 아니냐"정도의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픽 카드 시장에서 HDCP라는 규격은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버무려 만든 암호 기술 같은 것이 아니라 실제 회로와 로직이 필요한 일종의 암호 키를 담은 하드웨어이기 때문이다. 인텔이 주창했지만 DVI 관련 칩셋을 만드는 실리콘 이미지사에서 '개발'한 것을 보면 이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대로 HDCP에 대응하는 그래픽 카드는 분명히 GPU에 관련 기능을 부여하거나 롬칩의 형태의 HDCP 디코딩 키 칩를 그래픽 카드에 탑재해야 한다.

가전 업계와는 별도로 PC 업계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HDCP에 대해 준비해왔다. 외신 보도에 의하면 ATI의 경우 이미 레이디언 8500 시절부터, 엔비디아의 경우에는 지포스 FX5700 부터 HDCP를 지원한다고 발표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HDCP 지원'이 GPU 단계에서 지원하는 정도인지, 아니면 실제 HDCP 디코딩 칩셋이 탑재되어 HDCP 적용 컨텐츠를 디지털로 재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인지는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즉, 이를 피상적으로만 바라보는 일반 유저 입장에서 당연히 HDCP가 실제로 지원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당시에는 디코팅 키가 무엇인지 조차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HDCP 암호가 걸린 영상을 재생하기 위해서는 HDCP 암호를 풀수 있는 디코딩 키가 필요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같은 'HDCP 가능'이라는 표현을 둘러싸고, 유저들과 업체간의 미묘한 입장차가 생기고 있다. HDCP 가능이란 표현에 대해 실제 이를 HDCP 컨텐츠 재생이 가능한 것으로 인식 해오던 일반 유저들의 입장에 ATI와 엔비디아가, HDCP 지원과 관련해 언급해왔던 내용은 GPU에서 HDCP의 규격을 만족한다는 정도의 입장으로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즉, 디코딩 칩이 달릴 경우 HDCP 적용 컨텐츠를 정상적으로 재생할 수 있다는 정도의 의미로 사용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실제 제조사들이 HDCP를 언급하기 시작했을때 GPU 차원에서 지원한다고 구체적으로 밝힌적이 없고 단순히 HDCP에 대한 지원 내용만을 밝혔기 때문에, 이를 쉽게 말하면 두리뭉실한 표현으로 최대의 마케팅 효과를 본 것으로도 해석해볼 수 있다.

2005년초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 비스타의 출시 계획을 발표하면서 차세대 HD 영상을 윈도우즈 비스타 환경에서 감상하려면 HDCP 인증을 받은 그래픽 하드웨어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했었다. ATI나 엔비디아와 같은 회사가 HDCP 라이센스를 취득하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연간 미화 15,000 달러이며, 출고하는 제품 한대당 0.5 센트의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사실 미화 15000 달러는 ATI나 엔비디아 같은 회사에 큰 금액은 아니다. 실제로 OEM 제품들의 경우 이 디코딩 키가 담긴 롬이 탑재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ATI나 엔비디아 모두 HDCP 관련 라이센스를 획득하고 매년 라이센스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ATI나 엔비디아의 파트너사는 HDCP가 지원되는 디코딩 칩을 달아 시장에 HDCP 지원 그래픽 카드라는 타이틀로 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쓸모도 없는 HDCP 칩을 달아서 구지 원가 상승의 부담을 안고 장사를 할 회사가 어디 있을까? 이 시점에서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적어도 시장에서 아직까지 우리가 살 수 있는 HDCP 지원 단품 그래픽 카드는 단 한 개도 없다는 사실이다.

현재 그래픽 카드 회사들은 OEM으로 공급되는 일부 자사 제품에 암호 키가 담긴 롬이 탑재하여 제공하고 있다. 일례로 엔비디아의 경우 소니 바이오 데스크탑 RA940GN4에 지포스 6600 HDCP버전을, VGX-XL1 디지털 리빙 시스템에 지포스 6200 HDCP / HDMI 버전을 공급하고 있다.

소니의 경우 디지털 규격이나 포멧에 대해 매우 민감하기도 하고, 그런 규격과 포멧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를 많이 두기 때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CE(Consumer Electronic)이나 PC 쪽에 새로운 규격이나 첨단 기술을 많이 도입하는 편이다.

그러나 일반 소매 시장에는 아직까지 HDCP에 대한 지원 내용이 전무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HDCP에 지금부터 대응한다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일이며, 낭비가 심한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당장 블루레이 디스크나 HD-DVD를 통해 혹은 초고속 통신망을 통해 1920x1080 해상도의 영화를 PC에서 감상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그것이 가능한 시스템이나 그래픽 카드를 구입한다 해도, 기껏해야 데모 영상을 돌려볼 수 있을 뿐이다. 시장이 활성화되고 어느 정도의 시장 가치와 투입 대비 산출이 확실해질 때가 되면 HDCP 디코딩 칩을 장착한 그래픽 카드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현재 엔비디아의 홈페이지나 파트너사의 홈페이지에는 'HDCP 지원'이나 'HDCP 가능'이라는 그 어떤 언급도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예전부터 명시되지 않았는지(서두에서는 지포스 FX 5700에서부터 지원한다고 발표했었다고 서술한바 있다), 아니면 최근 이러한 사태로 인해 일련의 조치가 취해졌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이 문제가 불거져 나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HDCP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으므로 명시가 되어 있었더라도 눈여겨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엔비디아 본사 홈페이지에 등록된 디벨로퍼 뉴스레터 28호에는 지포스 7800 GTX와 관련한 포스웨어 75버전에 대한 소개에 'HDCP 지원'이라는 문구가 있어 그 궁금증을 더욱 더 증폭시키고 있다(www.nvidia.com 메인 페이지의 상단 검색 창에 hdcp를 검색하면 관련 문서를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엔비디아의 한 관계자는 "엔비디아는 그래픽 카드를 엔비디아 브랜드로 만들지 않고 칩셋만 제조해 만들어 파트너 사들에게 공급하는 칩셋 제조사이다. 따라서 그래픽 PCB에 장착되는 디코딩 칩과 관계없이 GPU 차원에서 'HDCP 지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엔비디아의 경우 파트너사들에게 레퍼런스 디자인으로 그래픽 카드를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파트너사들이 제품 단가를 위해 메모리나 파워 컴퍼넌트의 일부를 싼 부품으로 교체하는 일은 있겠지만, HDCP 디코딩 칩 과 같은 핵심적인(?) 부품을 제거하지는 않을 것이지 않은가? 따라서 GPU 차원에서 HDCP 지원이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해도 이를 보는 사람들은 '엔비디아의 그래픽 카드가 HDCP를 지원하는구나'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ATI의 경우에는 ATI 홈페이지의 제품 정보에는 아직 'HDCP 호환'과  'HDCP 가능(HDCP ready)'이 모두 명시되어 있다. 몇일 전에는 이중 'HDCP 가능 (HDCP ready)' 문구가 사라졌었지만 최근 다시 생겨났다(확인 결과 업데이트 상의 오류라 이야기해 주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HDCP ready'라는 용어는 통상적으로 모든 하드웨어 기술이 구비되었을때 사용하는 것이라 한다. 하드웨어 기술이 완벽히 구비되었지만, 규격이 일반화되지 않아 현재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는 'HDCP ready'를, 규격이 일반화되어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상태라면 'HDCP supported'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 HDCP와 관련한 최근의 일련의 해프닝을 보면서 어느 정도 결론이 내려지고 있다. 그래픽 칩셋을 만드는 그래픽 카드 업체들이나 혹은 이 그래픽 카드 업체의 칩셋을 받아 실제 그래픽 카드를 제조하는 파트너사들 모두 명확한 용어를 정확히 사용해 소비자를 혼동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의도가 어떻든간에 HDCP가 실제 디지털로 구현이 되지 않는 현 단계에서 HDCP와 관련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혹은 더 나아가 지원된다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혼란만 안겨줄 뿐이다.

지금 HDCP를 바라보는 일반 소비자들이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인가? HDCP 규격이나 장치들이 대중화될 무렵에는 아마 십중팔구는 현재 쓰는 그래픽 카드나 시스템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하늘 높이 걸려있는 레이디언 X1900 XTX나 지포스 7800 GTX도 중고장터에서 10만원에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HDCP는 없다.

소비자들은 명확한 표현을 바라고 있다. 스펙에 코어클럭이 550MHz이면 실제 코어클럭이 550MHz로 동작하는 당연한 것을 바라고 있다. HDCP를 지원하는 GPU면 GPU이지 그것을 그래픽 카드로 까지 연결시키는 두리뭉실한 표현을 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